[딜러리엄] 읽다 만난 '천사 자국'과 Pathetic 의미
소설 [딜러리엄]을 읽다가 '천사 자국'이라는 표현에 멈추고 원서를 찾아봤습니다. 넷플로 미국 드라마나 영화 볼 때 많이 들었습니다. 단어 보는 건 처음입니다. "빼딕? 빼대딕?"
'스노우 엔젤'이라고 하면 다들 알텐데 굳이 한글로 '천사 자국'이라니 신선하고 재밌습니다.
소설:"한심한 건 너야." 그렇게 말하며 해나는 내가 있는 쪽을 향해 모래를 높이 집어 던졌다. 우리는 둘 다 등을 대고 바닥에 누워서 마치 눈 위에서 천사 자국을 만드는 놀이를 할 때처럼 팔 다리를 몸통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고 있었다.원서: "Pathetic," she says, lobbing a handful of sand in my direction. Both of us flop onto our backs, arms and legs flung apart like we're about to make snow angels.
1. 'Pathetic' (패세틱): 그저 "한심하다"일까?
드라마에서 정말 자주 들리는 단어입니다. 상황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집니다.
- 비난할 때: "진짜 찌질하다", "한심해 죽겠다" (질책하는 느낌)
- 연민을 느낄 때: "애처롭다", "불쌍하다" (안쓰러운 느낌)
- 상황이 안 좋을 때: "수준 미달이다", "형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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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에게 요청한 소녀의 해변 위 천사 자국=스노우 엔젤 |
2. 'Snow Angels'이 아닌 '천사 자국'?
북미나 유럽권 아이들이 눈이 오면 바닥에 누워 팔다리를 휘저어 만드는 모양을 말합니다. 영화 [렛미인]의 포스터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릅니다.
소설에서는 눈(snow)이 아닌 모래(sand) 위에 '천사 자국'을 만들었습니다. '스노우 엔젤'이라고 하면 'snow'라는 단어에 관심이 갑니다. 하지만 '천사 자국'이라고 하니 형태와 모양에 집중하게 됩니다. 접하지 않았던 단어라 그럴까요? 너무 예뻐서 책을 다시 펼치게 만들었습니다.
3. 통제 사회 속의 Mark(자국)
[딜러리엄] 세계관에서 모두 성인이 되면 '치료'를 받습니다. 그 증거로 목에 흉터가 남습니다. 금지됐던 밤의 외출도 가능하게 합니다.
강제로 새겨지는 수술 흉터가 아닌, 레나와 해나가 바닥에 스스로 만드는 '천사 자국'은 목의 흉터와 대비되는 것 같습니다. 번역가가 이를 염두에 두고 '자국'이라는 단어를 쓴 걸까요?
원서의 재밌는 단어들
1. Handful
- 물리적인 양: 해나가 "한 손 가득" 'handful' 집어 던졌다는 건, 손바닥 전체로 모래를 듬뿍 퍼서 휙 던졌다는 뜻입니다.
- 소수, 몇 안 되는:꼭 손에 잡히는 게 아니더라도, 아주 적은 수를 말할 때 씁니다.
예: "Only a handful of people know the secret." (오직 극소수의 사람들만 그 비밀을 안다.)
- 다루기 힘든 사람:사람한테 "He is a handful."이라고 하면 "그 사람은 손이 많이 가", "정말 버거운 존재야"라는 뜻이 됩니다.
[딜러리엄]에서 사랑에 빠진 주인공들의 감정 자체가 통제 사회에서는 참으로 '다루기 힘든(handful)' 존재들인 것 입니다.
2. flop + onto
- flop: 힘이 없는 상태로 툭 떨어지거나 쓰러지는 소리와 모양을 말합니다. 물고기가 바닥에서 '파닥'거릴 때,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 모습이 떠올라 지시나요?
- onto: '~위로'라는 방향성
- 두 단어가 만나니 레나와 해나가 "모래 바닥을 향해 몸을 아예 내던지며 철퍼덕 눕는 그림"이 완성됩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통제된' 모습이 아니라 스스럼없이 편하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3. Flung apart
- Flung(fling): 무심하게 휙 내던지다.
- Apart: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 팔과 다리를 몸통에서 멀리 '휙 던져놓은' 상태, 흔히 말하는 "대자로 뻗었다"는 표현을 아주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팔다리를 쫙 벌려 크게 휘저여야 예쁜 '천사 자국'이 완성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