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데모니엄] 속 목숨을 건 보급품, 그리고 미국의 식품 산업

Later that afternoon they come back, ten of them, bearing heavy-duty garbage bags. The bags have been placed in halffull wooden crates have floated down to us. Even Raven can't maintain order, or control her excitement. Everyone rips the bags to shreds, shouting and whooping as supplies tumble onto the floor: cans of beans, tuna, chicken, soup; bags of rice, flour, lentils, and more beans; dried jerky, sacks of nuts and cereal; hard-boiled eggs, nestled in a bin of towels; Band-Aids, Vaseline, tubes of ChapStick, medical supplies; even a new pack of underwear, a bundle of clothes, bottles of soap and shampoo. Sarah hugs the jerky to her chest, and Raven puts her nose in a package of  soap, inhaling. It's like a birthday party but better: ours to share, and just for that moment I feel a rush of happiness. Just for that moment, I feel as though I belong here.
그날 오후 늦게 그들은 열 명이나 되는 인원이 튼튼한 쓰레기 봉투를 들고 돌아왔다. 봉투들은 국경의 코체코 강에 반쯤 채워진 나무 상자에 넣어두었고, 그 상자들이 우리에게 떠내려왔다. 레이븐조차 질서를 유지하거나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모두가 봉투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소리를 지르고 환호성을 질렸다. 물품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콩, 참치, 닭고기, 수프 통조림, 쌀, 밀가루, 렌틸콩, 그리고 더 많은 콩이 든 자루들; 말린 육포, 견과류와 시리얼 자루들, 수건 통에 담긴 삶은 달걀, 반창고, 바셀린, 챕스틱, 의료 용품들, 심지어 새 속옷 한 벌, 옷가지 묶음, 비누와 샴푸 병까지. 사라는 육포를 가슴에 꼭 안았고, 레이븐은 비누 포장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마셨다. 마치 생일 파티 같았지만 더 좋았다. 우리끼리 함께 나누는 파티였고, 그 순간만큼은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여기에 속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로렌 올리버의 소설 [판데모니엄] 의 장면입니다. 레나는 살던 곳에서 도망 나와 통제 정부가 만들어 놓은 전기가 흐르는 국경을 넘어왔습니다. 소설 속에서 레나가 살던 곳은 미국 포틀랜드였습니다. 배경은 미국이지만 사랑을 질병으로 규정한 가상의 통제 정부를 피해 숨어 있어서 먹고 살기가 힘든 것입니다. 보급품이거나 어쩌면 밀수품이라고 해야 할까요? 뭐가 됐던 소중한 물건들입니다. 저는 물품명이 나열된 이 부분이 너무 좋습니다. 풍족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미국 문화를 하나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입니다.
닭고기와 달걀은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식품이 아닙니다. 빠른 시간 내에 이들에게 음식을 전해줄 동료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안심이 됩니다. 

저는 여기서 통조림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미국 브랜드일 것 같은 그린 자이언트 콘 통조림을 먹어 봤습니다. 토마토 홀 통조림으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 오뚜기 콘, 좋아하는 황도, 스팸, 참치캔, 런천미트햄, 파인애플 통조림 등을 먹어 봤습니다. 통조림과 캔의 기준을 잘 모르겠습니다. 통조림은 '식품의 형태'이고, 캔은 '금속 용기'를 뜻하는 것입니다. 
통조림 (Canned Food): 음식을 보관하는 방법
음식을 캔이나 유리병에 넣고, 공기를 뺀 뒤에 뜨거운 열로 균을 죽여(가열 살균) 장기 보관 할 수 있게 만든 '요리 방식'입니다. 
통조림은 '한자어'였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통(筒): 통 대롱 통 (둥근 통, 깡통을 뜻함)
조(造): 만들 조 (제조하다, 가공하다의 조)
림(詰): 담을 림 (가득 채우다, 팩하다의 일본식 한자)즉, 글자 그대로 풀면 "둥근 통(깡통)에 음식을 만들어 넣고 밀봉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토마토나 옥수수처럼 조리지 않고 원물 그대로 데쳐서 물과 함께 넣은 것도, 깡통에 가공해 담았기 때문에 한자 뜻에 따라 모두 '통조림'이 됩니다.
캔(Can): 그릇의 이름
알류미늄이나 주석 같은 금속으로 만든 용기(깡통) 자체를 말합니다. 내용물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탄산음료가 들어있으면 '음료수 캔', 맥주가 들어있으면 '맥주 캔'입니다. 내용물이 없어도 캔입니다.

이러한 미국의 식품산업은 남북전쟁, 1차, 2차 세계대전 때 발전했다고 합니다. 전선의 군인들에게 식량을 안전하고 빠르게 전달해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전선까지 식재료를 나르기 위해 물류·유통 기술도 폭발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수백만 명의 군인에게 신선한 고기와 채소를 먹여 사기를 높이고자 했고, 이 군사적 목표가 현대 신선식품 산업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1. 군수용 ‘마켓 센터 시스템’과 콜드체인의 완성

1) 중앙 집중식 신선 유통: 1941년 미군 보급부대(Quartermaster Corps)는 군대 최초로 신선식품만 전담하는 ‘마켓 센터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유통 대기업의 임원들을 영입해 민간의 효율성을 이식했습니다.
2) 냉장 컨테이너의 보급: 고기나 신선한 야채가 바다를 건너는 동안 썩지 않도록 수천 대의 유도 냉장 트럭과 기차, 냉장선(Liberty ships)을 촘촘히 연결하는 초창기 콜드체인(Cold Chain)망을 완성했습니다

2. 가공육과 신선육의 대량 처리 기술
1) 부위별 규격화: 과거에는 가축을 통째로 유통했으나, 전쟁 중 군납을 위해 소고기와 돼지 고기를 부위별로 해체하여 뼈를 바르고(Boneless) 규격화하는 대형 도축·정육 가공 공장 시스템이 정착되었습니다.
2) 급속 냉동 기술(Quick-Freezing): 식품의 세포 조직을 파괴하지 않고 급속으로 얼려 해동 후에도 신선한 맛을 유지하는 기술이 전시 식량 보관을 위해 대규모로 투자되었습니다.

3. 전후 대형 마트(Supermarket)의 폭발적 성장
1) 물류 기술의 민간 이전: 전쟁이 끝난 후 군대에서 검증된 냉장 트럭, 대규모 냉장 창고 인프라, 물류 관리 기법(Logistics)이 고스란히 민간 유통업계로 넘어왔습니다.
2) 신선식품 코너의 탄생: 이 물류 혁신 덕분에 미국 전역에 대형 슈퍼마켓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자들은 계절과 지역에 상관없이 캘리포니아산 오렌지나 중서부산 신선한 소고기를 집 앞 마트에서 언제든 신선하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 대가족의 현실 식탁과 '식품 사막'의 모순

유튜브에서 쇼츠로 미국 엄마의 대가족 식사 만들기 등을 봤습니다. 신선한 야채와 신선한 고기를 다듬어 요리하는 모습은 없었습니다. 토마토 통조림, 냉동 고기, 냉동 야채와 소스 등을 한번에 부어 팬에 끓이거나 오븐에 넣어 요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직사각형의 넓은 오븐팬에 구워진 요리를 주걱이나 스패출러로 선을 그어 나눈 뒤에 접시에 담는 모습 등을 많이 봤습니다. 그럼에도 정말 맛있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건 정말 훌륭한 요리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영상은 음식이 아닌 이상한 간식을 나눠 담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집의 식사가 아니고 급식도 정말 모양이 이상해 보이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웃에 안좋은 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그릇을 하나씩 들고 방문하거나 문 앞에 두기만 하고 떠나기도 합니다. 음식을 만들 형편이 아닌 것을 알고 만들어 오는데 보통 '캐서롤'이란 음식이라고 합니다. 오븐에 데우기만 해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이 음식은 '장례식 감자'라고 불린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건 미국 가정의 보통이라 합니다. 대가족이 신선 제품을 매번 소비하기엔 경제적 부담이 크다고 합니다. 야채나 고기 등을 냉동 가공식품이나 통조림으로 훨씬 싸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선 식품은 아무래도 요리하기 위해 씻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소비됩니다. 지금 한국의 아이 한명 많아야 두명이 아니라, 미국의 다자녀 과정에서는 식사 때마다 준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보통의 평범한 대가족은 이미 손질이 끝난 냉동 야채나 냉동 고기, 통조림 등을 많이 이용한다고 합니다.

미국은 물류도 많이 발전했다고 하는데 왜 그러는 걸까요? 어디 유튜브에서는 어떤 미국인들은 생선을 그대로 구이나 찜 등으로 요리하는 것을 평생 못보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솔직히 이해가 안갑니다. 세계 최고의 물류 기술을 가진 미국이 마주한 물리적 거리가 만들어내는 유통의 한계와 비극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모순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 ‘식품 사막(Food Desert)’ :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수천만 명의 미국인이 주변에 신선식품을 파는 대형 마트가 없는 ‘식품 사막’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도시 지역은 반경 1마일(1.6km), 농촌 지역은 반경 10마일(16km) 이내에 신선한 채소나 고기를 파는 식료품점이 없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열악한 대중교통과 자가용 중심의 사회:미국은 국토가 넓고 대중교통이 부실하여 마트에 가려면 자가용이 필수입니다.  차가 없으면 활동하기 힘들고, 주유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집 앞 주유소 편의점이나 달러 스토어(다이소 같은 저가숍)에서 파는 통조림, 냉동 피자, 과자만 사 먹게 됩니다.  

-'칼로리 가성비'와 인플레이: 미국에서는 신선한 샐러드나 과일을 한 끼 먹는 비용보다 맥도날드 햄버거나 대용량 냉동 가공식품을 사는 비용이 훨씬 저렴합니다. 인플레이션으로 신선식품 가격이 급등하자 가난할수록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에 의존하게 되고, 이는 미국 저소득층의 비만율과 당뇨병 발병률을 높이는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 대형 마트의 수익성 위주 : 대형 유통체인(월마트, 크로거 등)은 마진이 남지 않고 도난율이 높은 저소득층 주거지나 외딴 시골 지역의 매장을 폐쇄하거나 아예 입점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그 자리를 패스트푸드점과 편의점들이 채우게 되었습니다.

결국 미국은 식품을 대량으로 신선하게 유통할 ‘기술’은 있지만, 이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공급할 ‘분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마치며: 내 서랍 속 물건들이 주는 감사함 
소설에서 음식 뿐만이 아니라 반창고, 바셀린, 챕스틱, 의료 용품들, 심지어 새 속옷 한 벌, 옷가지 묶음, 비누와 샴푸 병까지. 물건 나열이 좋았습니다. 

저희 집에 많이 있는 물건들입니다. 심지어 비누는 잘 쓰지도 않아 모으고 모았다가 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경 너머 숨어 사는 이들에게 너무 소중한 자원들인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들에 감사하고, 당연시하지 않고 가능한 낭비하지 않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