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판데모니엄]의 1페이지, 나뭇잎이 숨통을 조일 때(ft. 콘플레이크 박사)
소설 [판데모니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첫 페이지부터 제 시선을 잡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예쁘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단어들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The leaves are almost black, knitted so tightly together they blot out the sky."Because it's snowing."thick flakes the color of ash swirling all around us.
'knitted together', 나뭇잎이 뜨개질하듯 엮일 때의 압박감
눈에 들어온 표현은 'knitted together'입니다. 분명 눈에 익숙한 단어인데 뜻은 전혀 몰라 검색해 보니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들쳐봤던 '뜨개질' 관련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뜻을 이해하니까 가슴 부분이 꽉 조여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나뭇잎들이 촘촘하게 엮여 하늘을 지워버렸다니(blot out). 누군가에게는 정교하게 아름다운 묘사겠지만, 저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습니다.
K는 왜 소리 내지 않을까? 'Know'와 'Knit'의 규칙
재미있는 검은 Knit의 발음입니다. 철자대로면 [크니트]인데, 영어 규칙상 kn-으로 시작하는 단어는 K발음을 안합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 Know (노우): 크노우 (X)
- Knee (니 - 무릎): 크니 (X)
- Knife(나이프 - 칼): 크나이프 (X)
- Knight (나이트 - 기사): 크나이트 (X)
왜 이러는 걸까요? 옛날 영어(고대 영어)에서는 실제로 '크' 소리를 냈었다고 합니다. 발음해 보시면 k와 n을 연달아 발음하는 게 어려워서 서서히 소리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K를 남겨둔 건 'Night(밤)'와 'Knight(기사)'처럼 소리는 같지만 뜻이 다른 단어를 구별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예전에 이렇게 발음했다'는 영어 역사의 흔적이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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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에 요청한 콘플레이크 사진입니다. 눅눅해지기 전에 신선한 우유와 먹고 싶어요. |
콘플레이크가 왜 여기서 나와? 'Thick Flakes'의 반전
또 눈에 들어온 문장은 "thick flakes the color of ash swirling all around us."입니다. 검색을 하면서 여기서 Flakes라는 단어를 보고 놀랐습니다. 마트에서 파는 '콘플레이크(Cornflakes)'의 플레이크니까요.
전 마트에서 파는 '플레이크'를 과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옥수수(Corn)를 가루 내서 반죽한 뒤에 얇은 조각(Flakes)으로 압축해 구운 것이었습니다. 19세기 켈로그(!!!!!!) 박사가 요양원 환자들을 만들다가 실수로 탄생시켰다고 합니다. 전 그냥 옛날에 병원에서 환자식이었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켈로그 박사가 만들었고 옥수수가 주원료라니 놀랍습니다.
재색 눈이 소용돌이치는 판데모니엄의 세계
소설 속에서는 얇은(thin) 콘플레이크가 아니라 'thick flakes(두꺼운 조각)'라고 묘사합니다. 하얀 눈이 아니라 회색 '재'의 색을 가진 눈송이들이 swirling (소용돌이치며) 내리고 있습니다.
함박눈처럼 무거운 눈이 내리지만(snowing) 재색 눈이 내 주위에서 휘몰아치는 풍경은 정말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너무 폭력적인 느낌이어서 레나의 앞날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신비롭지만 폭력적인 [판데모니엄]의 1페이지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