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형제 | 무서움을 배우려고 길을 떠난 젊은이의 기묘한 결말 (feat. 19세기 50탈러 가치, 모루 뜻)
도서관에서 대출해 온 그림형제 민담집을 읽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이야기는 몇 개 안되고 처음 보는 제목들이 대부분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읽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읽기 시작했고 이야기 속에서 뭐든 마음에 들거나 인상적인 한 가지는 꼭 나오기 때문에 계속해서 읽기로 했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무서움을 배우려고 길을 떠난 젊은이'입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있는 두 아들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배우지 못한다에 마음이 쓰인 이유
큰아들은 영리하고 분별이 있고 무엇이든 잘하지만, 작은 아들은 무슨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이 배우지 못한다는 문장이 지금껏 살면서 제가 저에 대해 느끼는 점이라 속이 답답하고 목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싶어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나도 답답하다고 변명하고 싶어 여기에라도 남기겠습니다.
아무튼 그렇기에 무슨 일을 하던 큰아들이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큰아들은 밤에 하는 일이나 교회 묘지처럼 으스스한 곳을 지나가야 할 때면 무서워서 "안 돼요. 못 가겠어요. 골이 오싹한걸요."라고 합니다.
작은 아들은 그런 형의 말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형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등골이 오싹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대체 그게 무엇인지 자신도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성당 지기 추락 사건과 아버지가 준 '오십 탈러'의 가치
성당지기에게 아버지가 작은 아들에 대해 하소연을 합니다. 성당지기가 등골이 오싹한 것쯤은 가르칠 수 있다며 작은 아들을 데려갔고, 한밤중에 교회 종탑에서 석상처럼 서서 겁을 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꿍꿍이가 있는 나쁜 존재로 오해한 작은아들이 달려드는 바람에 성당지기는 아래로 떨어졌고, 다리가 부러진 채 밤새 아파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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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중 교회 종탑에서 귀신인 척 겁을 주려던 성당지기를 나쁜 존재로 오해해 밀쳐버리는 순간 |
결국 화가 난 아버지는 작은 아들에게 너와 있으면 불행해진다며 오십 탈러를 쥐여주고 집에서 쫓아냅니다. 달러를 '탈러'로 잘못 인쇄한 것일까 생각했는데 검색해 보니 19세기 초 독일의 화폐 단위는 '탈러(Taler 또는 Thaler)'라는 은화 단위를 사용했습니다.
그림형제가 이 민담을 수집하고 기록한 19세기 초반(1800년대 초) 독일의 화폐 단위 기준으로 보면, 당시의 독일 노동자의 한 달 평균 임금은 약 2~4달러 수준이었습니다. 50탈러는 일반 노동자의 약 반년에서 1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큰 목돈이었습니다.
말로는 아들을 매정하게 내쫓았지만 사실은 세상에 나가서 기죽지 않고, 새 인생을 개척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작은 아들은 그저 덤덤하게 아버지 뜻대로 하겠다며 집을 나섭니다. 그리고 길을 걸으며 중얼거립니다.
"등골 한번 오싹해 봤으면, 등골 한번 오싹해 봤으면."
시체들과 불을 쬐는 주인공, 착한 걸까? 바보인 걸까?
"등골 한번 오싹해 봤으면"을 중얼거리는 그를 지나가던 남자가 보고, 교수형 당한 사람들이 매달린 곳을 알려줍니다. 작은 아들은 내가 등골이 오싹해지면 50 탈러를 주겠다며(얼마나 등골이 오싹해보고 싶은 건지 헛웃음이 나옵니다.) 죽은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여기서 기괴한 장면이 나옵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졌는데, 작은 아들은 매달려 있는 시체들이 추울까 봐 하나씩 모두 아래로 내려놓고 불을 쬐어줍니다. 심지어 옷에 불이 붙자 조심하라며 말까지 겁니다. 죽은 사람에 대한 지식은 없고 그냥 쓸데없이 착한 바보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상했습니다.
불길에도 반응이 없는 시체들을 다시 하나씩 모두 위에다 매달았습니다. 아침이 되어 장소를 알려준 남자가 50탈러를 받을 생각에 신나서 왔으나, 작은 아들은 위에 매달린 시체들이 꼼짝도 안 한다며 불만을 말합니다.
남자는 시체를 아무렇지 않게 다루는 주인공의 기이함에 질린 것인지 황당한 것인지 "저런 녀석은 본 적이 없다"라고 떠나버립니다.
"왜 때려죽이냐!" 고양이 학대범과 숨겨진 역사적 배경
주인공은 다시 길을 떠납니다. 길에서 만난 마부에게도, 찾아간 여인숙 주인에게도 "등골 한번 오싹해 봤으면"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여인숙 주인이 마법이 걸린 성에서 사흘을 지내면 등골이 오싹해질 수도 있고, 공주와 결혼도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줍니다.
작은 아들은 곧바로 왕을 찾아가 허락을 받고 성에서 첫 번째 밤을 보내게 됩니다. 자정이 넘어 "야아옹, 얼어 죽겠다!"라며 검은 고양이 두 마리가 나타납니다. 작은 아들은 고양이들에게 여기 와서 불을 쬐라며 친절한 척하다가 고양이들을 잡아 때려죽이고 물에 버립니다.
그냥 이야기인 건 알지만 때려죽였다는 것이, 너무 끔찍하고 잔인해서 화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주인공은 앞서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이(시체들이) 추워할까 봐 하나씩 다 내려주고 불을 쐬어준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위에다 매다는 수고를 아끼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검색을 해봤더니 역사적으로 당시 서양에서는 검은 고양이를 악마나 마녀의 하수인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즉, 작은아들 주인공은 동물 학대를 한 것이 아니라 갑자기 나타난 악마 퇴치를 한 것입니다.
실제로 과거 유럽에서는 봄이 오면 검은 고양이들을 잡아 자루에 넣어 때려죽이거나 불태우는 끔찍한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무지로 고양이들은 고통 속에 죽어갔고, 그 결과 고양이를 천적으로 두는 쥐가 들끓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무지하고 잔인한 풍습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사망하게 만든 흑사병(페스트)이 창궐하는 원인 중 하나였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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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들이 쏟아져 나와도 두려워하기는커녕 뼈다귀로 볼링을 즐기는 겁 없는 주인공 |
시체와 볼링을 치고, 귀신을 패는 밤(feat. 모루 뜻)
목에 사슬을 감은 고양이들과 개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주인공은 이들을 모두 처치합니다. 그러고는 구석에 있는 침대에 누워 자는데, 침대가 스스로 움직이고 온 성안을 돌아다녀도 불 옆으로 옮겨 잠만 잘 잡니다.
둘째 밤과 셋째 밤은 더 기괴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굴뚝으로 사람 반토막들이 떨어지더니 서로 자석처럼 붙어 사람이 됩니다. 주인공은 무서워하기는커녕, 뼈다귀들로 볼링을 즐깁니다. 주인공이 너무나 궁금해서 아침마다 찾아오는 왕에게 공놀이를 했고 돈을 몇 푼 잃었지만 재밌었다고 합니다.
셋째 날 밤에는 덩치 큰 남자들이 관을 들고 왔는데 그 안에는 차가운 시체가 들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얼마 전에 죽은 내 사촌 형인가 하며 춥겠다고 불을 쐬어줍니다. 시체를 침대로 옮겨 이불을 덮어주기까지 합니다.
이불 덕분에 몸이 따뜻해진 시체는 살아나고 주인공의 목을 조르려 하자, 주인공은 은혜도 모른다며 시체를 다시 관속에 처넣어 버립니다. 너무나 기이한 상황이고 사람이라면 당연히 공포나 이상함을 느낄 법한데 착한 건지 바보인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어서 수염 난 늙은 귀신이 나타나 주인공을 대장간으로 데려가고, 모루를 내리치며 위협합니다. 모루는 대장간에서 달군 쇠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쇳덩이입니다. 늙은이 귀신은 힘을 과시하려 모루를 내리쳤지만, 주인공은 기지를 발휘해 귀신의 긴 수염을 모루 틈에 고정해 버립니다. 결국 수염이 묶여 도망가지 못하고 쇠몽둥이로 맞던 늙은이 귀신은 살려달라며 주인공에게 황금이 가득 든 궤짝 세 개를 바치게 됩니다.
마음에 드는 반전 엔딩
도대체 주인공이 얼마나 궁금한지 감도 안 잡히는 왕이 아침이 되자 찾아옵니다. 아직 등골이 오싹한 것을 모르겠다는 주인공에게 성을 구했으니 공주와 결혼하라 하였고, 이 나라의 왕이 됩니다.
그는 신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배우고 싶었던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은 아직도 몰랐기에 버릇처럼 "한 번이라도 등골이 오싹해 봤으면, 한 번이라도 등골이 오싹해 봤으면!"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어느 날 그 말을 들은 몸종이 개울로 나가 양동이에다 작은 물고기들을 가득 담아 왔습니다. 밤이 되어 왕이 자고 있을 때 통에 가득 담은 찬물과 작은 물고기들을 왕에게 확 쏟아부었습니다. 젊은 왕이 깨어 소리쳤습니다.
"아 등골이 오싹해! 등골이 오싹해! 여보 등골이 오싹한 게 뭔지 알겠소!"
마치며: 파랑새는 이미 있었다
저는 이 황당한 이야기의 엔딩이 너무 좋았습니다. 주인공이 그렇게 알고자 했던 것이기에 좋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누구도 위험해지지 않는 몸종의 아이디어가 재치 있고 평화로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단하고 거창한 곳에서 인생의 진리나 행복이 있다고 믿고 찾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알려주는 것은 의외로 일상 속의 단순하고 사소한 방법으로도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파랑새를 찾으러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와 파랑새를 발견한 것처럼 원하는 것은 주변에 있다, 이미 가지고 있다, 멀리서 찾지 마라, 그런 뜻인 걸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뭐 잘난 것이 없고 말재주가 없어 멋지게 설명은 못하겠지만, 그냥 이 이야기에서 이 엔딩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왕이 몸종에게 큰 상을 내렸길 바라면서 기록으로 남겨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