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핀스 빌(PUFFIN'S BILL) | 바다오리 퍼핀의 신비롭고 애틋한 삶 (520 색연필 #16)

520색 색연필 세트에서 한 개씩 순서대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순서가 되어 꺼낸 오늘의 색연필은 아주 낯선 'PUFFIN'S BILL'이라는 이름입니다.

처음 보는 단어여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Puffin은 '바다오리'이고 'Bill'은 '부리'여서 '바다오리의 부리'라는 뜻이었습니다. 색연필 이름이 오리의 부리라니 너무 귀엽고 독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진에서 본 바다오리는 애니메이션 속에 나오는 새 같기도 하고, 부리의 색이 정말 컬러 이름으로 나올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오늘은 바다오리에 대해 검색한 것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제 색연필 이름인 부리의 색이었습니다. 너무 귀여운 바다오리의 부리 사진을 찾다 보면 전혀 다른 새처럼 보이는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다른 새가 아니라 계절에 따라 부리의 색이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분홍색과 흰색이 섞인 거친 질감의 배경 위에 가로로 놓여 있는 브루트프너(Brutfuner) 520 퍼핀스 빌(Puffin's Bill) 컬러 색연필 사진. / A Brutfuner 520 colored pencil in "Puffin's Bill" placed horizontally on a textured pink and white background.
'퍼핀스 빌(Puffin's Bill)' 색연필 한 자루


바다오리(퍼핀) 부리 색이 변하는 이유

바다오리 부리의 색은 늘 같은 색이 아닙니다. 계절에 따라 극적으로 변합니다.
  • 봄과 여름 (번식기): 이 시기가 되면 바다오리의 부리는 사진 속의 아름다운 붉은 컬러로 물듭니다.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구애의 신호'인 것입니다. 부리 겉면에 주황색 각질판이 자라나면서 크기도 커지고 색상도 화려해집니다. 이때 수컷은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독특한 구애 춤을 추거나 울음 소리를 내며 짝을 고릅니다.
  • 가을과 겨울 (비번식기): 번식기가 끝나고 겨울이 되면 화려했던 주황색 부리 껍질이 떨어져 나가는 '탈피'를 겪습니다. 알맹이만 남은 부리는 크기가 얇아지고, 색상 역시 포식자의 눈을 피하기 위해 탁하고 어두운 색으로 변하게 됩니다.

분홍색과 흰색이 섞인 거친 질감의 배경 위, 'PUFFIN'S BILL' 글자와 숫자 '41'이 각인된 브루트프너(Brutfuner) 520 색연필 표면을 확대한 사진. / A close-up photo of the Brutfuner 520 colored pencil surface inscribed with "PUFFIN'S BILL" and the number "41", placed on a textured pink and white background.
41, 'PUFFIN'S BILL'


각자도생하다가 다시 만나는 일편단심 사랑

조사를 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바다오리 부부는 번식기인 봄과 여름에만 같이 지내고, 비 번식기에는 떨어져 지냅니다.

따로 지낸다고 하기에 저는 당연히 암컷들은 암컷 무리끼리, 수컷은 수컷들끼리 무리를 지어 갔다가 돌아와 만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다오리는 철새들처럼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이 아니라, 각자 바다오리 한 마리 한 마리가 다 각자 다른 곳들로 흩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의 GPS 추적 장치를 달아 연구한 결과, 번식기가 끝나면 남편 새는 북쪽 바다로, 아내 새는 동쪽 바다로 가듯 서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수천 킬로미터씩 흩어져 철저히 '혼자' 겨울을 보낸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봄이 오면 예전에 함께 아이를 키웠던 바로 그 절벽 땅속 둥지(굴)로 정확히 돌아와 다시 재회합니다. 서로 연락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너무 신기합니다.

그렇다면 부모 새들이 이렇게 각자 다른 바다로 흩어질 때, 아기 새는 누구를 따라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져서 찾아봤습니다.

아기 새와 부모 새의 6주간의 타임라인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엄마 새와 아빠 새는 아기 바다오리를 데려가지 않습니다. 바다오리의 독립은 그야말로 철저한 생존 본능 그 자체였습니다. 아기 새가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은 단 6주(약 40~45일) 정도일 뿐입니다


분홍색과 흰색이 섞인 거친 질감의 배경 위, 은박으로 'Y4 / 520 colors'가 새겨진 브루트프너(Brutfuner) 520 색연필 끝부분을 확대한 사진. / A close-up photo of the Brutfuner 520 colored pencil end with "Y4 / 520 colors" inscribed in silver foil, placed on a textured pink and white background.
반짝이는 은박 Y4 / 520 colors

아기 새와 부모 새의 6주간의 타임라인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엄마 새와 아빠 새는 아기 바다오리를 데려가지 않습니다. 바다오리의 독립은 그야말로 철저한 생존 본능 그 자체였습니다. 아기 새가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은 단 6주(약 40~45일) 정도일 뿐입니다
  • 1~2주: 알에서 막 깨어난 아기 새(퍼플링)는 털이 솜털 같아서 스스로 체온 조절을 못 합니다. 이때는 부모 새가 번갈아 가며 품어주고, 땅속 둥지(굴) 안에서 철저히 보호합니다.
  • 3~5주 차: 아기 새의 식성이 엄청나집니다. 엄마, 아빠 새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다로 날아가 부리에 불고기를 가득 물고 와서 아기 새를 먹입니다. 이때 아기 새는 둥지 안에서 안전하게 살을 찌우고 날개깃을 키웁니다.
  • 6주 차: 아기 새의 몸집이 어른 새만큼 커지고 날개 자라기가 완성될 때쯤, 부모 새는 미련 없이 먹이 주기를 중단하고 먼저 바다로 떠나버립니다.

부모의 가출과 한밤중의 홀로서기

아기 새를 두고 먼저 떠나버리는 부모 새가 이해가 안 갔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과학적인 이유가 숨어 있었습니다.

부모 새가 계속 둥지를 왔다 갔다 하면 천적의 눈에 쉽게 띄어 아기 새가 위험해집니다. 게다가 둥지 안에서 받아먹기만 해서 살이 찌면 날지 못해 천적에게 잡혀 먹기 쉽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부모 새는 아기 새를 혼자 남겨둡니다. 아기 새가 배고픔에 지쳐가는 며칠 동안 자연스럽게 살이 빠지면서, 비로소 하늘을 날 수 있는 가벼운 몸이 된다고 합니다.

결국 둥지에 혼자 남겨진 아기 새는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어느 날 밤 갈매기 같은 천적의 눈을 피해 둥지 밖으로 기어 나와 절벽 밑 바다로 뛰어내립니다. 제대로 날지 못해 거의 굴러떨어지다시피 바다로 향하는 서툰 첫 비행입니다.

3~5년간의 외로운 바다 생활: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이렇게 떠난 아기 바다오리는 땅을 밟지 않고 오직 바다 위에서만 3년에서 5년 동안 철저히 혼자 생존하며 어른이 됩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이 생활은 가능하게 하는 비결들이 있었습니다.
  • 잠과 휴식 (바다 위의 침대): 바다오리는 육지 동물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바다 물결 위에 몸을 맡긴 채 오리처럼 둥둥 떠서(Bobbing) 잠을 자고 휴식합니다.
  • 방수 성능 (천연 방수 왁스): 바다오리의 꼬리 근처에는 기름샘이 발달해 있어, 이 기름을 온몸의 깃털에 꼼꼼히 발라 완벽한 방수 막을 만듭니다. 덕분에 얼음장 같은 북극해 바닷물에 몸에 전혀 닿지 않아 체온을 유지합니다.
  • 먹이 구하기 (물속의 수중 비행): 하늘을 나는  날개로 물속에서 펭귄처럼 엄청난 속도로 헤엄을 치며 물고기를 잡습니다. 최대 수심 60m까지 잠수할 수 있는 뛰어난 잠수 성능 덕분에, 바다로 떠난 첫날부터 본능적으로 스스로 물고기를 사냥해 먹습니다.
  • 수분 섭취 (염분 분비샘): 바다오리의 눈 위에는 소금을 걸러내는 특별한 '염분 분비샘(Salt gland)'이 있어 바닷물을 마신 뒤 짠 소금기만 부리 밖으로 뿜어냅니다. 바닷물만 마셔도 탈수가 오지 않는 이유입니다.
물론 바다에도 갈매기가 있고 커다란 물고기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다 위에서 지내는 이유는 땅보다 생존에 훨씬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바다오리의 검은 등은 하늘의 천적들이 내려다보기에 어두운 바다 수면처럼 보입니다. 하얀 배는 물속의 포식자들이 보기에 바다처럼 보이는 보호색 덕분에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다 위에서 3~5년을 보낸 아기 바다오리는 자신이 태어났던 섬 근처로 돌아와 마침내 새로운 짝을 짓고 부모 새가 됩니다.


분홍색과 흰색이 섞인 거친 질감의 배경 위, 옅은 갈색의 나무 단면과 뾰족한 연필심이 선명하게 보이는 브루트프너(Brutfuner) 520 색연필 퍼핀스 빌(Puffin's Bill)의 촉 부분을 확대한 사진. / A close-up photo of the Brutfuner 520 colored pencil tip in "Puffin's Bill" on a textured pink and white background, clearly showing the light brown wood grain and the sharpened pencil lead.
퍼핀스 빌(Puffin's Bill)의 연필심


부모 새는 서로를 어떻게 찾는 걸까요?

봄이 오면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던 남편 새와 아내 새는 작년에 같이 아기 새를 키웠던 바로 그 둥지(땅속 굴)로 동시에 날아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과학적 본능 두 가지가 숨어 있습니다.
  • 둥지 귀환 본능 (Nest Fidelity): 이들은 놀라운 기억력과 자기장을 감지하는 능력으로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작년에 살던 둥지 위치로 정확히 돌아옵니다.  먼저 도착한 새는 둥지 앞에서 짝을 기다립니다.
  • 목소리와 고유한 행동 인식: 봄이 된 둥지 근처에는 수만 마리의 다른 바다오리들이 몰려듭니다. 사람 눈에는 다 똑같은 새들로 보이지만, 부부는 서로 고유한 낮음 울음소리(웅얼거리는 소리)를 통해 파트너를 정확히 식별해 냅니다.
마침내 짝도 도착하면 서로 고개를 까딱이고, 다시 화려해진 주황빛 부리를 딱딱 부딪치는 격한 인사를 나눕니다. 이를 생태학 용어로 '빌링(Billing)'이라고 부릅니다. 이 빌링 인사를 통해 서로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는 짝, 둥지 앞에서의 긴 기다림

바다오리는 보통 20~25년을 살아가면서 평생 단 한마리의 짝만 바라봅니다. 하지만 모든 부부가 이 행복한 재회를 맞이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도 밖에 나가면 예상치 못한 여러 사건과 사고를 겪듯이, 바다오리에게도 비극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그 중 비극의 원인은 유튜브 댓글에 많이 달리는 "인간이 미안해"라는 말과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들이 바다오리를 사냥해서 고기와 가죽 등을 얻어 이득을 얻는 것입니다.
  • 전통적인 식재료 (고기 섭취):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바다오리 고기를 먹어왔습니다. 척박하고 추운 북극해 지역에서 겨울철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로 가슴살 부위를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하여 요리해 먹는데, 생선 맛이 나는  오리고기 혹은 '간(Liver)'맛이 아는 독특한 고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는 현지인들보다 관광객들을 위한 호기심 자극용 고급 별미 요리로 식당에서 판매해 상업적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 깃털과 가죽 활용: 과거에는 바다오리의 촘촘하고 방수가 잘 되는 깃털을 모아 이불이나 베갯속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가죽을 외투의 안감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 뜰채를 이용한 독특한 사냥법: 바다오리를 잡을 때 총을 쏘기보다는, 절벽 틈새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바다오리를 거대한 잠자리채 같은 긴 그물망으로 허공에서 낚아채는 전통 방식을 씁니다.
이렇게 사람에게 사냥 당하거나 천적에게 목숨을 잃은 바다오리의 짝은, 둥지 앞에서 짝이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다른 부부들이 재회하여 부리를 부딪치며 기뻐할 때, 짝을 잃은 바다오리는 홀로 둥지 입구를 지키며 수일 동안 바다 먼 곳을 바라보는 행동이 관찰되곤 합니다.
  • 일정기가 '애도(Mourning)'의 시간: 짝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는 다른 일편단심 조류들처럼 바다오리 역시 돌아오지 않는 짝을 기다리며 곧바로 다른 짝을 찾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이들이 최소 한 시즌(그해 봄·여름)이상을 홀로 보내며 '일종의 애도 기간'을 갖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 새로운 삶을 위한 재혼 (Re-pairing): 너무 고맙게도 바다오리는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홀로 긴 슬픔의 시간을 견뎌낸 후, 그다음 해 봄이 되면 종족 번식을 위해 새로운 파트너를 찾는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바다오리 보호의 움직임

현재는 인간이 이들을 사냥하지 말고, 철저히 보호하고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세계적으로 매우 높습니다.
  • 개체수의 급감: 인간의 과도한 사냥과 기후 변화로 인한 먹이 감소가 겹치면서, 최근 수십 년간 바다오리의 개체수가 무려 70%  가까이 폭락했습니다.
  • 사냥 제한과 금기: 현재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바다오리를 멸종위기 취약 (VU)등급으로 지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현지에서도 사냥 기한을 며칠 단위로 엄격히 제한하거나 아예 금지하는 추세입니다. 
  • 관광 자원으로서의 가치: 이제는 잡아서 먹는 것보다, 살아있는 바다오리를 멀리서 관찰하는 '생태관광'상품이 현지 주민들에게 훨씬 더 지속 가능하고 큰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퍼핀스 빌 색연필 테스트 샷


서로 다른 질감과 색상을 가진 4가지 종류의 종이 위에 브루트프너(Brutfuner) 520 퍼핀스 빌(Puffin's Bill) 컬러 색연필로 선과 별 모양 등을 그리며 발색 테스트를 한 사진. / A photo of a color swatch test using the Brutfuner 520 colored pencil in "Puffin's Bill" on four different types of paper, showing various lines and star shapes.
퍼핀스 빌(Puffin's Bill)의 매력


마치며

제가 무슨 소리를 더 할 수 있을까요? 그냥 색다른 고기를 한 번 먹어보고자 하는 사람의 욕심 때문에, 평생 한 짝만 바라보는 새의 삶이 무너진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짝을 사정도 모른 채 무작정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을 바다오리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리고 조사를 하다가 너무 상처라고 해야 할지, 충격이라고 해야 할지 기록해 두자 싶은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바다오리의 짝을 찾는 행동이 궁금해서 '바다오리 구애'를 검색창에 쳤더니, 아래 칸에 '제안 바다오리구이로 검색하시겠습니까?'라고 나왔습니다. 너무 기분이 이상해서 '바다오리 구애 방법'을 다시 쳤더니 아래에 '제안 바다오리구매방법'으로 검색하시겠습니까?'가 나오는 겁니다. 동심 파괴까지는 아니지만 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이 기특한 새의 특성이 너무도 놀랍고 대단해서 하나하나 다 자세히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누가 볼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이 정도만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내가 몰랐을 뿐 너무도 아름답고, 충격적이면서 대단한 일들이 참 많습니다. 대자연의 이 위대한 순리 앞에서 그저 저의 하찮음과 무력함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오늘 색연필 PUFFIN'S BILL은 단순히 예쁜 다홍색을 넘어,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꿋꿋하게 앞을 향해 나아가는 바다오리의 의연함에 한번 더 감동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