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색연필 29번째 : 네온 네프라이트 (Neon Nephrite) 마오리족 보석 역사

제가 그동안 알던 색연필 이름은 금색, 보라색, 주황색 같은 이름을 가졌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다른 36색, 48색 색연필은 너무 예쁘지만 색상 이름이 따로 쓰여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브루트푸너 (Brutfuner) 520색연필 세트에는 JELLY BEAN, SUGAR ALMOND, BRAN 등 신기한 이름들이 가득합니다. 그림에 대해 전혀 모르기에, 이 독특한 색연필 이름들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서 포스팅을 시작했습니다.

본문에는 실제 색연필의 발색과 정보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색연필 사진과 함께 '새겨진 번호'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스타벅스 다이어리, A4용지, 다이소 쇼핑봉투, 검은 도화지 등 '종이 별 발색 사진'도 같이 올렸습니다.

29번째로 기록할 오늘의 색연필 이름은 '네온 네프라이트 (Neon Nephrite)'입니다. 정보를 찾아보니 '네프라이트'는 '연옥'이라는 보석 광물을 말하며, 여기에 형광색(Neon)을 더해 주로 포인트 색상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그럼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신성한 녹색 보석 '포우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분홍색과 흰색이 섞인 거친 질감의 배경 위에 가로로 놓여 있는 브루트프너 (Brutfuner) 520 네온 네프라이트 (Neon Nephrite) 컬러 색연필 사진. / A Brutfuner 520 colored pencil in "Neon Nephrite" placed horizontally on a textured pink and white background.
'네온 네프라이트 (Neon Nephrite)' 색연필 한 자루

뉴질랜드 마오리족이 목숨처럼 아낀 보물, '포우나무'


영국식으로는 '그린 스톤 (greenstone)'이라고 부르는 네프라이트는 마오리족 언어로 '포우나무(Pounamu)'라고 부릅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모아나'에 나오는 마오리족입니다.) 이 돌을 국가 최고의 보물로 여길 정도로 귀하게 여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강철처럼 단단한 최고의 실용성

포우나무는 내부 섬유질 구조가 촘촘하게 얽혀 있어 쉽게 부러지지 않고 매우 단단합니다. 마오리족은 이 돌을 갈아 일상 도구(Toki)와 전투용 무기를 만들며 척박한 자연 속에서 생존해 나갔습니다.

마나 (Mana)와 권력의 상징

포우나무로 만든 무기나 장신구는 부족 간의 전쟁 후에 교환하는 가장 귀중한 선물이었습니다. 또한, 부족장의 높은 지위와 권위를 상징하는 최고의 물건이기도 했습니다.

조상과 자연을 잇는 영적 매개체

이들은 포우나무를 '대지의 어머니 (파파투아누쿠)'가 내려준 선물로 생각했습니다. 돌 안에 영적인 생명력 (마우리)과 조상들의 정기가 깃들어 있다고 믿어, 목걸이 형태로 만들어 자식들에게 대물림하면서 보호와 행운을 빌었습니다.

글자 없는 사회의 계약서

가치를 지닌 '화폐'이자 '증서' 역할을 했습니다. 문자가 없던  전통 사회에서 포우나무는 토지 소유권이나 중요한 권리를 이전할 때 문서 대신 주고받았습니다. 
분홍색과 흰색이 섞인 거친 질감의 배경 위, 'NEON NEPHRITE' 글자와 숫자 '514'이 각인된 브루트프너 (Brutfuner) 520 색연필 표면을 확대한 사진. / A close-up photo of the Brutfuner 520 colored pencil surface inscribed with "NEON NEPHRITE" and the number "514", placed on a textured pink and white background.
514, 'NEON NEPHRITE'

바다 괴물에게 납치된 인간 여인과 남편의 전설


마오리 신화 속 포우나무는 거대한 바다 괴물 (타니화)과 얽힌 영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가장 유명한 전설은 바다 괴물 '푸아우티니' 때문에 '와이타키'라는 여인이 납치당해 차가운 녹색 돌로 변해버린 이야기입니다.

바다 괴물 '푸아우티니'는 북섬의 강가에서 목욕을 하던 아름다운 여인 '와이타키'를 보자마자 반해서 그녀를 납치합니다. 뛰어난 전사이자 주술사였던 그녀의 남편 '타마후아'는 마법 나침반을 이용해 뉴질랜드를 전역을 뒤져 괴물을 추격했습니다. 하지만 남섬의 외딴 계곡까지 몰린 괴물은 여인을 순순히 빼앗기기 싫었습니다. 결국 납치한 와이타키의 몸을 단단하고 차가운 녹색 돌 (포우나무)로 바꿔 놓은 채  바다로 도망을 갔습니다.

너무 늦게 도착해 돌이 된 아내를 보고 남편은 울부짖었습니다. 마오리족은 포우나무를 갈아냈을 때 감도는 은은한 녹색 광택을 '아내를 잃은 남편의 슬픈 눈물'이라고 부릅니다. 이 신화 속 장소들을 따라, 오늘날 남섬의 계곡에서만 포우나무 (연옥)가 발견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픈 역사: 여기서도 등장하는 영국의 약탈


마오리족에게 영혼이 깃든 보물이었던 포우나무는 19세기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지울 수 없는 아픈 역사를 겪게 됩니다. 당시 영국 제국은 마오리족과 교묘하고 불평등한 '와이탕이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 조약 문서에는 마오리족의 토지와 자원에 대한 소유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포우나무가 많이 묻혀 있는 남섬 토지 소유권을 강제로 몰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땅속에 묻힌 마오리족의 보물들까지 영국 왕실로 강제 귀속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물림 대던 마오리 부족의 전통 장신구인 '헤이티키'와 무기인 '메레' 등 수많은 가업 보물인 '타옹가'들이 무단 약탈당했습니다. 이렇게 빼앗긴 마오리족의 족의 보물들이 영국 본국으로 대량 유출되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마오리족이 빼앗긴 전통 장신구와 보물들 중에는 햇빛을 받으면 은은하게 빛나는 보석들이 많았습니다. 아래 은박 글자가 새겨진 색연필은 네온이 들어가 형광으로 빛나는 독특한 컬러지만 포우나무로 만든 보석들은 은은한 녹색으로 빛납니다.
분홍색과 흰색이 섞인 거친 질감의 배경 위, 은박으로 'L08 / 520 colors'가 새겨진 브루트프너 (Brutfuner) 520 색연필 끝부분을 확대한 사진. / A close-up photo of the Brutfuner 520 colored pencil end with "L08/520 colors" inscribed in silver foil, placed on a textured pink and white background.
반짝이는 은박 L08 / 520 colors

하나님을 전하는 선교사가 왜 보물을 가져갔을까?


기독교를 전파하러 온 선교사들과 유럽 탐험가들은 마오리족에게 철제 도구나 총기를 주는 대가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포우나무 보물들을 헐값에 가져갔습니다. 이 모순적인 행동 뒤에는 복합적인 배경이 있었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은 마오리족에게 철제 농기구를 주는 것을 '문명화'라는 선행으로 정당화했고, 본국 선교회에 이교도 문화를 버린 증거이자 선교자금 마련을 위해 포우나무 장신구를 유출했습니다. 때로는 생존을 위해 총기가 급했던 마오리족이 먼저 교환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종교인들조차 당시 식민주의적 편견에 치우쳐,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소중한 문화재를 해외로 유출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지금 그 보물들은 어디에 있고, 반환은 되었을까?


현재 뉴질랜드 국외에서 가장 많은 포우나무 문화재를 소장한 곳은 영국의 영국 박물관 (British Museum)입니다. 대대손손 가문에 내려오던 가보를 제임스 쿡 선장이 가져가 왕실에 바쳤던 연옥 목걸이 '헤이티키' 등도 현재 이곳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행히 마오리족의 끈질긴 투쟁 끝에 1997년 '응아이 타후 포우나무 귀속법'이 통과되면서, 뉴질랜드 땅에 있는 모든 천연 포우나무의 소유권은 마오리 부족에게 공식 반환되었습니다.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 역시 뉴질랜드 국립박물관 '테 파파'를 중심으로 반환 협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비록 과정은 매우 느리지만, 과거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 수집가들이 무단으로 약탈해 갔던 '조상들의 머리 유골 (머리뼈=해골)'을 시작으로 전 세계 박물관들이 자발적으로 보물들을 돌려주는 사례가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네온 네프라이트 (Neon Nephrite) 발색


서로 다른 질감과 색상을 가진 4가지 종류의 종이 위에 브루트프너 (Brutfuner) 520 네온 네프라이트 (Neon Nephrite) 컬러 색연필로 선과 별 모양 등을 그리며 발색 테스트를 한 사진. / A photo of a color swatch test using the Brutfuner 520 colored pencil in "Neon Nephrite" on four different types of paper, showing various lines and star shapes.
종이마다 다르게 표현되는 네온 네프라이트 (Neon Nephrite)

네온 네프라이트 컬러의 소재가 된 녹색 보물, 포우 나무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녹색인 포우나무와 네온 네프라이트 색은 많이 다릅니다. 색연필 대는 진한 연두색에 약간의 형광빛을 섞은 듯한 빛깔인데 겉모습이 너무 예쁩니다. 종이에 색칠할 때 유난히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나고 필기감이 아주 좋았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형광색 펜처럼 발색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누런 종이와 검은 도화지에서는 사각거리는 느낌이 덜했고, 색감이 종이에 완전히 흡수되는지 묻히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색연필을 중간에 떨어뜨렸더니, 깎을 때마다 심이 뚝 부러져 나온 것이 3번이 넘습니다. 길이가 짧아져서 너무 아쉽습니다.
분홍색과 흰색이 섞인 거친 질감의 배경 위, 옅은 갈색의 나무 단면과 뾰족한 연필심이 선명하게 보이는 브루트프너 (Brutfuner) 520 네온 네프라이트 (Neon Nephrite)의 촉 부분을 확대한 사진. / A close-up photo of the Brutfuner 520 colored pencil tip in "Neon Nephrite" on a textured pink and white background, clearly showing the light brown wood grain and the sharpened pencil lead.
네온 네프라이트 (Neon Nephrite)의 연필심

마치며


처음에는 연옥이라는 보석 이름과 네온 네프라이트 색상이 달라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포스팅할지 몰라 오랜 시간 질질 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네프라이트를 보물로 여기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색연필을 통해 여러 이야기를 전할 수 있도록 꾸준하게 해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