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피 레드(Poppy Red) | 붉은 양귀비꽃 뒤에 숨겨진 세계사의 비극 - 520색연필 #26 (321 R23 )
저는 520색 세트 색연필이 있습니다. 박스 2개에 얇은 플라스틱 판이 각각 10개씩 들어있습니다. 얇은 플라스틱 판에는 색연필이 26개씩 나란히 뉘어 있습니다. 손에 잡힌 첫 판부터 색연필을 순서대로 기록하면서 계속 같은 판에 있는 색연필들을 보니 살짝 지겹기도 했습니다. 오늘 드디어 맨 끝에 있는 마지막 색연필 '포피 레드(Poppy Red)'를 포스팅할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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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피 레드(Poppy Red)' 색연필 한 자루 |
Poppy Red도 역시 잘 모르는 단어여서 검색해 봤습니다. Poppy는 양귀비꽃을 뜻합니다. 외국에서는 Poppy 한 단어로 보통 쓰이지만, 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때는 'Poppy flower'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사진으로 찾아본 양귀비꽃은 꽃잎이 주황빛이 도는 따뜻하고 고혹적인 붉은색인데, 제가 가진 색연필도 예쁜 붉은색입니다.
사실 처음에 '양귀비'라는 검색 결과를 봤을 때는 마약 성분을 떠올렸지만 알아보니 양귀비도 종류가 다양했습니다. '개양귀비(Poppy)'는 씨앗을 베이글 등 빵의 토핑으로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식물입니다.
이 색상에 대해 찾아보면서 가슴 아프고도 뜻깊은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붉은 양귀비꽃이 영국, 캐나다 등의 국가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전사자를 기리는 '추모의 날(Remembrance Day)'의 상징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도 추모의 의미로 가슴에 단다고 합니다. 수많은 희생자를 만든 제1차 세계대전은 왜 일어난 것일까요?
사라예보 암살 사건의 숨겨진 비극
본질적인 원인은 유럽 강대국들의 끊임없는 '땅따먹기 경쟁'과 도미노처럼 얽혀 있던 '동맹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발단은 1908년, 거대 강대국이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보스니아'를 강제로 집어삼키면서 시작됩니다.
형제 같은 이웃 나라가 짓밟히는 모습을 본 세르비아 사람들과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의 주민들은 엄청난 위기감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914년,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가 훈련을 참관하러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로 직접 찾아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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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1, 'POPPY RED' |
황실의 구박을 받던 부부,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당당한 데이트
사실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는 황실 안에서 엄청난 차별과 구박을 받던 외로운 부부였습니다. 아내 소피는 명문 귀족 가문 출신이긴 했지만 황실에 비하면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결혼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결국 황태자비의 지위를 누릴 수도 없고 아이들은 왕위를 이어받을 수 없다는 계약 후에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 수도 비엔나에서는 늘 모욕을 당하던 아내였지만, 이번에 방문한 사라예보는 황실의 엄격한 규칙이 통하지 않는 변두리였습니다. 황태자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황후처럼 대접해 주겠다며 기쁘게 여행을 떠난 것이었는데, 그들의 마지막 데이트가 되고 말았습니다.
황태자 부부에게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특별한 여행이었지만, 억압받던 보스니아의 청년들에게는 전혀 다르게 보였습니다. 자신들을 지배하는 강대국의 황태자가 군사 훈련까지 참관하러 온 모습이 과시와 도발로 느껴진 것입니다.
결국 엄청난 위기감과 분노를 느낀 세르비아계의 19세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와 민족주의 단체 청년들은 황태자 부부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 황태자의 운전기사가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골목길에서 마주치게 되었고, 청년의 총성이 울리게 되었습니다.
50세의 황태자는 목을 맞아 피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옆에 쓰러진 아내를 보며 아이들을 위해 살아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하지만 복부에 총을 맞은 46세의 소피 백작부인은 남편의 무릎 위로 쓰러져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황태자 역시 의식을 잃었고, 이 암살사건을 계기로 강대국들이 줄줄이 참전하면서 잔혹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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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짝이는 은박 R23 / 520 colors |
부모를 잃은 세 아이, 그리고 이어지는 비극
황태자 부부에게는 당시 13살, 12살, 10살이었던 어린 세 자녀가 있었습니다. 부모를 하루아침에 끔찍한 암살로 잃었음에도, 황실 친척들은 이 아이들을 철저히 '남'으로 취급했습니다. 결혼할 때 맺은 계약을 이유로 아이들은 황실 재산을 물려받지도 못한 채 외가 친척 손에서 쓸쓸하게 자라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918년 패전국이 된 오스트리아 제국이 해체되면서, 최소한의 울타리마저 사라져 버렸습니다. 새로 들어선 공화국 정부는 과거 황실의 재산을 몰수했고, 아이들은 추방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평범한 시민으로 숨어 살던 아이들에게 더 큰 비극인 제2차 세계대전이 찾아왔습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강제로 합병했을 때, 황태자의 두 아들은 "나치에 반대한다"라는 목소리를 냈고 결국 악명 높은 나치 다하우(DAchau)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어 끔찍한 고문과 강제 노동을 당하는 비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황태자 부부에게 총을 쏜 프린치프는 만 19세로 사형을 내릴 수 없는 미성년자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사형 대신 감옥에서 2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앓고 있던 결핵이 심해져 전쟁이 끝나기도 전인 1918년 4월에 사망했습니다.
최고 권력자도,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가난했던 열혈 청년도 전쟁 앞에서는 모두 비극의 희생양이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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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듯한 햇살 속 선명한 붉은 양귀비꽃들 |
전쟁터에 피어난 붉은 양귀비
개양귀비 씨앗은 땅속에서 수십 년간 휴면 상태로 버틸 수 있지만, 발아하려면 땅이 뒤집히고 햇빛이 필요합니다. 전쟁의 중심지였던 벨기에 플랑드르(Flanders) 지역은 포격과 참호전으로 땅이 뒤집히고 석회 가루가 토양에 섞이면서, 양귀비가 자라기 완벽한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전장과 군인들의 무덤 위로 새빨간 양귀비꽃이 끝없이 피어나 땅을 뒤덮었습니다. 당시 군인들 사이에서는 전우들이 흘린 붉은 피가 땅에 스며들어 양귀비꽃으로 피어났다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1915년, 전쟁에 참전한 캐나다 군의관 존 맥크레이(John McCrae) 중령은 전우의 무덤가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붉은 양귀비꽃을 보고 〈플랑드르 필드에서(In Flanders Fields)〉라는 유명한 시를 썼습니다. 이 시를 읽고 감명받은 이들의 추모 캠페인과 기부 활동이 이어지면서 오늘날 붉은 양귀비는 전 세계적인 '희생'과 '추모', 그리고 '평화에 대한 희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포피 레드(Poppy Red) 발색
포피 레드 색연필을 종이에 색칠한 것입니다. 노란빛의 종이에서는 다홍빛이 보이는데 A4 종이에서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다른 색연필 립스틱 레드가 검은 도화지에서도 잘 보였던 것에 비해 포피 레드는 거의 보이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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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 종류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포피 레드(Poppy Red)의 매력 |
마치며: 2026년 7월, 여전히 멈추지 않는 비극을 보며
지금은 2026년 7월입니다. 100년도 더 지난 과거 역사를 정리하면서, 2026년인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고 무섭습니다.
나의 일은 아니지만 뉴스로 참혹한 전황을 접할 때마다 절망적인 기분이 듭니다. 사람도 없는 거리에서 마른 몸으로 돌아다니는 강아지 영상이나 무고한 아이들의 참상을 끝까지 볼 수 없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높은 자리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식과 가족들은 안전한 자리에 두었기에, 남의 자식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2026년에도 전쟁이라니 믿어지십니까?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전쟁은 결코 없어질 수 없는 걸까요? 아름다운 '포피 레드' 컬러를 알았음에도, 서글픈 역사와 현실에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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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피 레드(Poppy Red)의 연필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