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베리(BARBERRY) | 알게 된 중세 번역가와 권력자의 자격 (520 색연필 #21)

분홍색과 흰색이 섞인 거친 질감의 배경 위에 가로로 놓여 있는 브루트프너(Brutfuner) 520 바베리(Barberry) 컬러 색연필 사진. / A Brutfuner 520 colored pencil in "Barberry" placed horizontally on a textured pink and white background.
'바베리(Barberry)' 색연필 한 자루

색연필에 새겨진 이름이 또 처음 보는 단어였습니다. '바베리(Barberry)'라는 이름이 신기해서 검색해 보니 한글이름이 '매자나무'였고, 붉은 열매가 무척 탐스럽고 쓸모가 많은 식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식물의 영어 이름 '바베리'에는 재미있는 역사가 숨어 있었습니다.

철자 하나 때문에 바뀐 이름: 오역이 만든 단어

사실 바베리는 원래 이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이 단어 자체가 '중세 번역가들의 황당한 실수'로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바베리의 진짜 어원은 아랍어 '바르바리스(Barbārīs)'에서 유래했습니다. 아주 오래전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족(Berber)은 자신들의 언어로 이 식물을 '아르기스(Argis)'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중세 유럽의 한 학자가 이 식물에 대한 아랍어 문헌을 라틴어로 번역하다가 필기체 단어 하나로 오독을 하고 맙니다.

"베르베르어(barbariyya)로는 이걸 '아르기스(argis)'라고 부른다."는 것을 이름이 '베르베르아르기스'라고? 정말 특이하군."하고 일하는 과정에서 원래 이름인 '아르기스'는 사라지고 이름이 꼬여 '바베리'라는 이름으로 이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문득 이런 일을 옛날에 했던 중세의 번역가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고, 월급은 얼마나 받았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중세 시대 지식인들의 삶과 노동의 가치는 어땠을까요?

초록색과 단풍 든 잎사귀가 달린 가시 돋친 나뭇가지에 밝은 붉은색 바베리 열매가 송이송이 매달려 있는 생생한 근접 촬영 사진. / A close-up vibrant photograph of bright red barberries hanging in clusters from a thorny branch with green and autumn-colored leaves.
구글이 생성해 준 바베리(매자나무) 이미지

중세 통·번역가가 100% 남성이었던 이유

놀랍게도 중세의 통번역사와 번역가들은 100% 남성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은 가톨릭 신부나 수도사, 학자들로 남자들만을 시켰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에는 여성이 교육을 받는 것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평민 여성들은 농사와 가축 돌보기, 가사노동과 육아에 치여 배움의 시간을 내는 것은 거의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귀족가의 여성들 역시 정략결혼이나 아이를 낳는 도구로 여겨졌으며, 체스를 두거나 자수를 놓는 것 외에는 통제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중세 여성 중 극소수만이 수녀원에서 지식을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일부 수녀들이 신학 책을 쓰거나 작곡을 하기도 했지만, 이들의 업적은 철저히 무시당한 채 남성의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앞서 소개한 바베리의 오역을 낸 인물 역시, 거대한 수도원 구석에서 촛불을 켜고 아랍어 책을 필사하던 남성 수도사였을 확률이 높습니다.

번역 한 권이 '강남 아파트 한 채 값'?

당시 고위 번역가들의 몸값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인쇄술이 없던 시절이라 라틴어, 아랍어, 그리스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전문 번역가가 책을 번역해 주면, 왕과 귀족들은 넓은 영토와 금화, 혹은 평생 먹고살 수 있는 연금을 주었습니다.

평범한 월급 수준이 아닌 '강남 아파트 한 채 가격'을 벌 수 있는 프로젝트 계약직이었습니다. 원하는 누구나 공부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고 지식을 독점한 채 고위 귀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습니다.

분홍색과 흰색이 섞인 거친 질감의 배경 위, 'BARBERRY' 글자와 숫자 '317'이 각인된 브루트프너(Brutfuner) 520 색연필 표면을 확대한 사진. / A close-up photo of the Brutfuner 520 colored pencil surface inscribed with "BARBERRY" and the number "317", placed on a textured pink and white background.
317, 'BARBERRY'

왕도 까막눈, 국가 최고 엘리트였던 수도사들

수도사들이 엄청난 대우를 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당시 왕이나 고위 귀족들조차 글을 모르던 '까막눈'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중세의 유일한 대학이자 도서관이었던 '수도원'은 전 세계의 지식이 모이는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수도사들은 매일 책을 읽고 베껴 쓰는 것이 일상인 '최고의 전문 지식인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가톨릭 공용어인 라틴어는 기본이고 그리스어, 아랍어, 등 외국어까지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수도사들은 왕의 곁에서 비밀 비서나 최고 자문관 역할을 도맡으며, 국가의 운명이 걸린 번역 작업을 처리하는, 왕에게 가장 안전하고 똑똑한 파트너였던 셈입니다.

색연필에 새겨진 '바베리'라는 식물 이름 하나로 중세 시대 지식의 독점 구조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신기합니다. 어제는 제가 중세 시대 수도사들을 알게 될 줄 몰랐습니다.

분홍색과 흰색이 섞인 거친 질감의 배경 위, 은박으로 'R5 / 520 colors'가 새겨진 브루트프너(Brutfuner) 520 색연필 끝부분을 확대한 사진. / A close-up photo of the Brutfuner 520 colored pencil end with "R5 / 520 colors" inscribed in silver foil, placed on a textured pink and white background.
반짝이는 은박 R5 / 520 colors

국가고시 대신 존재했던 철저한 도제 시스템

중세 유럽에는 오늘날의 자격시험 대신, 철저한 검증 과정과 도제 시스템을 거쳐야만 번역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1단계 수습 수도사(Novice): 보통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행동, 인성, 신앙심 평가를 엄격하게 검증받아야 정식 수도사가 되고 도서실 출입 권한을 얻었습니다.

2단계 필사 테스트와 추천제: 선배 밑에서 실전 검증을 시작했습니다. 정돈된 글씨체로 정확하게 문장을 옮기는 작업은 지옥 같은 노동이었습니다. 완벽히 증명해야만 추천을 받아 외국어 문헌을 번역하는'수석 번역가'로 승격될 수 있었습니다.

3단계 구두 논쟁 테스트: 중세 후기(12~13세기)에 이르러 대학교의 학자 번역가들이 등장했습니다. 이 시기에도 필기시험 대신, 교수들과 대중 앞에서 특정  텍스트를 해석하고 논리적으로 방어하는 '구두 논쟁 시험'을 통과해야만 학위를 받고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분홍색과 흰색이 섞인 거친 질감의 배경 위, 옅은 갈색의 나무 단면과 뾰족한 연필심이 선명하게 보이는 브루트프너(Brutfuner) 520 바베리(Barberry)의 촉 부분을 확대한 사진. / A close-up photo of the Brutfuner 520 colored pencil tip in "Barberry" on a textured pink and white background, clearly showing the light brown wood grain and the sharpened pencil lead.
바베리(Barberry)의 연필심

왕과 귀족들이 까막눈이었던 3가지 이유

충격적이게도 중세 유럽(특히 5세기~11세기 초반)에는 왕과 최고위 귀족들이 대부분 글을 모르는 까막눈(문맹)이었습니다. 당시의 독특한 문화적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무력의 시대: 칼과 힘이 지배하던 시절이라기에 왕과 귀족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전쟁터에 영토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는 오히려 체통이 깎이는 일로 생각했습니다.

•인장 반지의 활용: 왕은 그저 명령만 내리면 되었습니다. 글은 신하들이 받아 적었습니다. 결재 문서에는 사인 대신 자신의 고유 상징이 새겨진 '인장 반지'를 찍어 증명했습니다.

•대리인의 존재: 자신을 대신해 글을 읽고 쓸 똑똑한 신하(번역가)들이 넘쳤기에, 글을 배울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주요 사안에 대해 대신들과 치열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어야 했고, 끊임없이 경연을 통해 공부해야 했던 조선의 왕들과는 매우 대조적인 풍경입니다.

종이 색상별 바베리(BARBERRY) 색연필 발색 비교

검은색 도화지에서는 색이 묻혀 보이지 않습니다. 위부터 3개의 종이에는 자줏빛이 아주 살짝 느껴지는 붉은색의 느낌이 비슷하다고 저는 느낍니다. 색연필은 색칠이 잘 되고 쉽게 부러지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질감과 색상을 가진 4가지 종류의 종이 위에 브루트프너(Brutfuner) 520 바베리(Barberry) 컬러 색연필로 선과 별 모양 등을 그리며 발색 테스트를 한 사진. / A photo of a color swatch test using the Brutfuner 520 colored pencil in "Barberry" on four different types of paper, showing various lines and star shapes.
종이 종류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바베리(Barberry)의 매력

마치며

번역가가 되는 길은 무슨 고행 같습니다. 엄청난 노력과 인내, 성실함 그리고 능력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문득 글을 읽고 쓰는 것이 하찮은 일이었다면 여자들에게도 시켰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저 당시 여자들은 이미 가사 노동에 치여 글까지 배워야 했다면 몸이 남아나질 않았을 것 같습니다.

역시 지식은 곧 권력입니다. 만약 왕이나 귀족들이 글을 알았다면 수도사들의 위상이 저렇게 높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혹시 수도사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문화를 유재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왕이나 귀족들은 그런 상태가 편했으니까 눈감아 준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