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형제 | 성모 마리아의 아이 후기, 천룡인이 보인다?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대출한 그림형제 민담집을 읽고 있습니다. 그중 처음 보게 된 '성모 마리아의 아이(Mary's Child)'라는 이야기를 읽고 제가 느낀 것은 한마디로 "이게 뭐지? 도무지 이해가 어렵다."였습니다.

굶주림 속에서 건져진 새 삶

이야기는 가난한 나무꾼의 끼니 걱정으로 시작됩니다. 어느 날, 아름답고 키 큰 여인이 나타나서 자신을 '아기 예수의 어머니, 성처녀 마리아'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나무꾼의 형편이 어려워 보이니 아이를 자신에게 보내면 어머니가 되어 보살펴 주겠다고 합니다. 나무꾼은 아이를 성처녀 마리아에게 건네줍니다.

어쩌면 황당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즘도 아이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부모 멋대로 아이의 목숨까지 맘대로 하는 사건들이 뉴스에 정말 자주 보도되곤 합니다. 예전에는 '동반자살'이라고 표현하곤 했지만, 저는 '살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에 빠져서, 혹은 아이가 운다는 이유로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아기들을 해치는 비정한 사건들을 보면 인간성이 없다는 생각만 들 뿐입니다. 세 살 딸이 굶는 것보다 낫겠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성스러운 존재에게 보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나무꾼의 선택이 현실적이고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무꾼의 아내는 정말 괜찮을까요?

황금 옷 입고 누리는 천국의 호강

다행히 여인은 사기꾼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천국에서 달콤한 빵과 고소한 우유를 마시고, 황금 옷을 입으며 천사들과 노는 등 그야말로 상상도 못할 호강을 누리며 자라납니다. 아이가 열네 살이 되었을 때, 성모 마리아는 긴 여행을 떠나며 열세 개의 열쇠를 맡깁니다. 다른 문은 다 열어도 되지만 '열세 번째의 문'만은 절대 열면 안 된다며, 그러면 불행해진다는 당부를 남깁니다.

하지만 다들 짐작하셨을 겁니다. 아이는 열두 개의 문을 열어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열면 불행해진다고 경고한 열세 번째 문을 열고야 맙니다. 문을 연 흔적(황금 손가락)은 고스란히 남았고, 돌아온 성모 마리아가 문을 열지 않았느냐고 몇 번이나 묻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때마다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고, 결국 성모 마리아는 벌을 내립니다.

잃어버린 하늘 거주 자격

"너는 이제 하늘에서 살 자격이 없다."

정신을 차려보니 소녀는 땅 위의 황야 한가운데에 혼자 누워있었습니다. 빈 고목을 집으로 삼고 풀뿌리와 야생 딸기를 먹으면서 힘들게 생활합니다. 옷은 점점 낡아갔고 황금색 머리칼이 발바닥까지 내려올 정도로 세월이 흐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하러 숲이 된 이곳에 들어온 왕이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 성으로 가자고 합니다. 전 여기서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림형제 민담 속 남자들이 하나같이 다 처음 본 여자에게 집(성)으로  가자고 하니 너무 위험하고 무섭습니다. 현실이라면 서로에게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뭐 예쁘면 장땡이긴 합니다. 사람 속은 알 수 없으니 겉모습이라도 예쁘면 대접받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렇게 왕비가 되어 아이를 낳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을 때마다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금지된 문을 열었는지 다시 물어봅니다. 하지만 왕비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계속 고집을 부리면서 끝까지 열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벌로 갓난아기를 데려가 버립니다.

중앙에 독일어 제목 "KINDER- UND HAUSMÄRCHEN"이 음각으로 새겨진, 그림형제 동화 번역서의 짙은 주황색 패브릭 표지 근접 촬영 사진./ A close-up photograph of the dark orange fabric cover of the Brothers Grimm fairy tales translated book, featuring the German title "KINDER- UND HAUSMÄRCHEN" embossed in the center.
'성모 마리아의 아이'가 실려 있는 도서관에서 대출해 온 책

벼랑 끝에 몰려야만 터지는 진실

세 번이 출산이 이루어졌고 세 명의 아기가 사라지자 신하들은 왕비가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귀'라며  사형시켜야 한다고 난리를 치고, 왕은 더는 여론을 무시하지 못해 화형식을 열게 됩니다. 

이 미련하고 독한 여자는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해서야 후회를 합니다. 죽기 전에  '내가 문을 열었다고 고백할 수만 있다면' 하고 생각을 하자, 그제야 입 밖으로 자신이 문을 열었다는 말이 터져 나옵니다. 그 순간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고,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타오르던 불길이 꺼집니다. 

성모 마리아는 "자기 죄를 후회하며 고백하면 용서를 받는 법"이라며 빼앗아 갔던 아기 세 명을 돌려주고, 말을 못 하게 막아놨던 혀도 풀어줍니다. 왕비는 그렇게 다시 행복하게 잘 살았다며 황당하게 끝이 납니다.

민담 속 현실 속 천룡인들

제가 이 왕비가 벌을 받고 영원히 불행하게 살기를 바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수없이 자기최면을 걸며 거짓말을 하다가, '죽기 직전에서야! 죽기 직전에서야!' 잘못을 인정했는데도 군말 없이 용서해 주는 성모 마리아의 넓은 아량(클라스 크~) 놀랍기만 합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고 허무함이 남는 결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뉴스에서 이런 '왕비'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대중 앞에서 온갖 억울함을 호소하며 일을 크게 만듭니다. 결코 상대방과의 대화는 없고 방송에 알리는 것이 목적 같아 보입니다. 상대방이 얼마나 악마 같은지 자신들이 얼마나 학대 당했는지 말하지만 증거는 호소뿐이고 사례조차 없습니다.

뻔뻔하게 버티다가, 결국 법적인 처벌이나 경제적인 파국 직전에 몰려서야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며 사과 비슷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림형제 민담 속 미련하고 뻔뻔한 왕비의 모습이 현실의 인간들과 너무도 똑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오만함을 되새기며

사실 저는 아직도 왕비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그냥 솔직한 대답 한마디를 원했을 뿐입니다. 땅으로 쫓겨나 혼자 야생 풀을 먹으면서 지내다가 왕비가 되어 아이를 몇이나 낳으면서 시간이 지나는데도 계속 거짓말을 합니다.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거짓말을 한다고 문을 연 사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옛날 중세 시대의 민담이나, 지금의 현실이나, 막다른 절벽 끝에 몰리기 전까지는 절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그 지독한 오만함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요? 문득 저 역시 도 이런 멍청하고 오만한 태도로 누군가를 대했었나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