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ZING YELLOW(블레이징 옐로우) 노란 연필의 유래: 황제의 색에서 탄생한 클래식 (520 색연필 #9)
저는 520색이라는 엄청 많은 색연필 세트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막상 그림을 그리려니 막막했고, 그냥 색칠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색연필이 소중하고 아까웠습니다. 결국 거의 쓰지도 못한 채 장식품처럼 소장만 하고 있었습니다.
1. 520개 색연필과 나만의 금색 은색 '컬러 테라피'
사실 이 520색 색연필을 구매하기 전에 당근 마켓에서 금색과 은색 색연필 모음을 구매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나 TV를 보면 마음의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 도화지에 검은색 크레파스를 마구 칠하고, 어른들이 놀라는 장면이 종종 나옵니다. 저는 반대로 금색과 은색으로 도화지를 채워보고 싶어서 구매했었습니다. 실제로 종이에 색을 마구 칠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조금 해소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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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0 색연필 #9 블레이징 옐로우 색연필 전체 |
2. 블레이징 옐로우(Blazing Yellow): 타오르는 태양의 에너지를 닮은 색
오늘 기록으로 남기는 색연필은 '블레이징 옐로우(Blazing Yellow)'라는 이름입니다. 단어의 뜻을 검색해 보니 '타는 듯이 더운, 맹렬한, 격렬한'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처음 종이에 이 색을 칠했을 때, 저는 '노란색'이라는 단어와 매치가 되지 않았습니다. 보통 제가 느끼는 '노란색'은 봄날의 병아리나 개나리처럼 유약하고 여린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름이 '블레이징 옐로우'라서 일까요? 여리거나 약한 느낌은 전혀 없고, 말 그대로 경쾌하고 활발하며, 통통 튀는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이 색연필의 색감을 보고 단어의 뜻까지 확인하고 나니, 너무나 좋아하는 웹소설이자 웹툰인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데못죽)]이 떠올랐습니다. 작중 밴드 '태양섬'의 곡인 [태양처럼 타오르는]을 재해석해 무대에 올랐던 '영웅가' 팀의 순간이었습니다.
"타오르네 내 마음이 태양처럼 찬란하게"
"저 태양처럼 빛날 그날까지"
저만의 주관적인 감상이지만, 저는 이 가사와 영웅가 팀의 무대가 블레이징 옐로우라는 색상과 너무나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3. 우리가 기억하는 '노란 연필'의 정석, 그 시작은?
이 강렬한 노란색에 대해서 더 찾아보다가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은 '연필'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지우개가 달리고 각진 노란색 연필'이 떠올랐는데, 구글 AI와의 대화 중에 이 노란 연필의 놀라운 탄생 스토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1800년대 이전의 연필들은 색을 칠하지 않은 거친 나뭇결 그대로 유통되거나, 짙은 갈색이나 검은색이 전부였습니다. 칙칙했던 연필 시장에 눈부신 혁명이 일어난 것은 바로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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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0 색연필 21 BLAZING YELLOW 각인 |
4.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하르트무트 회사의 천재적 마케팅
당시 체코의 유서 깊은 연필 제조사였던 하르트무트(Hardtmuth) 회사는 박람회장에서 세상에 없던 샛노란 연필인 '코히누어 1500(Koh-i-Noor 1500)'을 선보이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품질이 좋고 단단한 최고급 흑연은 중국과 시베리아 국경 지대에서 채굴되었습니다. 하르트무트는 자신들이 이 최고급 흑연을 사용해 연필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 바이어들에게 알리고 직관적으로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찾아낸 영리한 방법이 바로 '동양의 문화'를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중국 제국 역사에서 노란색은 오직 '황제와 황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품격 있는 신성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르트무트는 자신들의 연필에 황제의 색인 '노란색'을 입히는 전략을 세우게 됩니다.
5. 장인 정신과 마케팅: 왜 하필 '14번'이었을까?
하르트무트 회사가 노란 연필을 만들 때 들인 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들은 연필 몸통에 노란색 페인트를 무려 14번이나 덧칠했습니다. 사실 당시 연필에 색을 칠하는 것은 '불량 나무의 흠집을 감추기 위한 눈속임'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하르트무트는 페인트를 아주 얇게 14번이나 레이어링하여, 마치 최고급 도자기나 유리처럼 매끄럽고 도톰한 표면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르트무트가 준비한 노란 연필의 정식 이름은 '코히누어 1500'이었습니다. 얇게 칠하고 말리는 과정을 무한정 반복할 수는 없었고 거듭하는 테스트에서 나무 질감을 완전히 지우고 도자기 같은 극상의 광택을 내는 가장 완벽한 도색 두께가 딱 '14번째'에서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코히누어(Koh-i-Noor)'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했던 '전설적인 다이아몬드'의 이름입니다. 자신들의 연필이 이 다이아몬드처럼 가치 있고 고귀한 연필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었던 하르트무트의 천재적인 마케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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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0 색연필 Y50 /520 colors |
6. 24k 순금 마감, 럭셔리의 끝팥왕이 되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르트무트는 연필 맨 끝부분(꽁지)을 24K(24ct) 순금박으로 감싸서 마감했습니다. 눈이 시릴 만큼 강렬한 노란 빛깔에 진짜 순금 장식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럭셔리의 끝판왕이 탄생한 것이었습니다.
이 연필은 당연히 상류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고 '부와 명예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전 세계 모든 연필 회사들이 너도나도 연필을 샛노란 색으로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겉모습만 비슷하게 했을 뿐,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드는 '14번의 도색과 24k 순금박 마감'은 결코 따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7. 미국의 자본주의와 실용주의가 탄생시킨 연필의 표준
유럽에서 시작된 이 노란 연필(코히누어) 열풍이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문구 역사는 또 한 번 뒤바뀝니다. 미국 연필 회사들은 철저하게 '원가 절감(돈)과 실용성'을 우선시했습니다. 진짜 금을 입히기엔 제작 단가가 너무 비쌌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들은 영리한 대안을 찾았습니다. 14번의 도색 대신에 단 1~2만 두껍게 노란색을 입혔고, 연필 끝에는 [노란색 몸통+황동색 금속 링+에버하르트 파버식 분홍색 지우개]를 결합한 것이었습니다. 이 일체형 연필은 대중을 완벽하게 열광시켰고 대량 생산에 돌입했습니다.
압도적인 편리함 : 지우개를 따로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져 비즈니스맨과 학생들의 업무 효율이 극적으로 올라갔습니다.
가성비 높은 대리만족: 진짜 금은 아니지만 번쩍이는 황동 링 덕분에 겉보기에는 최고급 코히누어 연필처럼 고급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훨씬 싸고 편리했으니 환영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전 세계가 '연필'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정석이자, 구글 AI와 대화하며 제가 가장 먼저 머릿속에 그렸던 바로 그 연필인 것입니다.
8. 노란색 연필이 대중에게 걸어버린 '색깔의 마법'
노란 연필이 최고급이라는 인식이 대중의 무의식 속에 얼마나 강하게 박혔는지를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연필 제조사 파버카스텔(Faber-Castell)에서 진행한 블라인드 테스트였습니다.
회사는 완벽하게 똑같은 품질의 흑연 심으로 연필 1,000자루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절반은 노란색으로, 나머지 절반은 초록색으로 칠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초록색 연필을 쓴 사람들은 "품질이 너무 조잡하다", "심이 잘 부러진다"라며 불만을 터트렸습니다. 내부 심은 완벽하게 똑같은 흑연이었는데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노란색 연필이 최고다"라는 세뇌 아닌 세뇌(?)를 당해 있었던 것입니다.
9. Blazing Yellow 실제 발색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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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가지 종류의 종이 위에 블레이징 옐로우 컬러 색연필로 테스트한 면적, 선, 곡선, 별 모양 발색 컷 |
마치며: 130년 전의 찐 광기가 남긴 유산
그 옛날, 잘 팔리는 연필을 만들기 위해 페인트를 14씩이나 레이어링하고 진짜 24K 금박으로 마무리했다니 그 장인 정신과 집착은 정말 '찐 광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돈이 정말 많다면 소장하고 싶을 만큼 탐나는 오리지널 제품이지만, 아쉽게도 현대에는 대중화와 공정 간소화를 거치며 당시 사양 그대로 생산되어 판매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당연하게도 130년 전 순금 연필은커녕, 안타깝게도 미국식 지우개 달린 노란 연필 한 자루도 없습니다. ㅎㅎ)
하지만 유럽의 화려한 사치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자신들만의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전 세계의 '클래식 연필'이미지를 가져간 미국 회사들의 자본주의 상술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장 중인 520색 색연필 중 하나인 '블레이징 옐로우'로 시작해 연필의 거대한 역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연필로 사각사각하며 종이에 무언가 끄적이고 싶어지는 기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