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트 오렌지(BRIGHT ORANGE), 색연필로 찾은 '타오르는 6월'의 반전 스토리 (520 색연필 #12)

몇 년 동안 집안의 장식품처럼 진열만 해두었던 520색 색연필 세트가 있습니다. 이 예쁜 물건을 그대로 묵혀두기가 아까워서, 요즘 나만의 '컬러 스토리'를 블로그에 기록하는 요즘입니다. 오늘의 색연필은 'BRIGHT ORANGE'입니다.



1. 브라이트 오렌지로 찾게 된 명화 '타오르는 6월'

블로그에 컬러 이야기를 올려야 하기에 무작정 구글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러다가 그림 전체가 오렌지빛으로 빛나는 것 같고 브라이트 오렌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의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어딘가에 반쯤 누워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운 이 명화는 '타오르는 6월'입니다. 너무 아름다운 그림 아니 이 명화는 프레더릭 레이턴 경(작위를 받았습니다)의 '타오르는 6월(Flaming June)'입니다. 마침 6월에 '6월'이 제목에 들어간 그림을 찾게 되니 재밌게 느껴집니다.

타오르는 6월' 작품 기본 정보

작가: 프레더릭 레이턴 (Sir Frederic Leighton / 영국 고전주의 화가)
제작 연도: 1895년 (화가가 사망하기 약 1년 전에 완성한 인생 걸작)
소장처: 푸에르토리코 폰세 미술관

영국 화가 프레더릭 레이턴 경의 명화 타오르는 6월(Flaming June). 선명한 주황색 실크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소파 위에 몸을 동그랗게 웅크린 채 잠들어 있고, 배경에는 석양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바다가 묘사되어 있다. / The famous painting 'Flaming June' by British artist Sir Frederic Leighton. It shows a woman sleeping in a curled position on a couch, wearing a vivid orange sheer silk dress, with a golden sea glowing under the sunset in the background.
프레더릭 레이턴 경의 '타오르는 6월(Flaming June)


2. 시스루 실크의 극치와 8K 초고화질 급 완벽주의 화풍

'타오르는 6월'은 강렬한 색채와 유려한 곡선미가 압권인 작품으로 여자 뒤의 바다 배경 속 지는 석양빛이 공간을 비추는 듯한 컬러를 내고 있습니다. 여자가 입은 브라이트 오렌지빛 드레스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인이 입은 옷은 정확히 '얇게 비치는 투명한 실크 가운(Sheer Silk Gown)'입니다. 화가는 실크 천의 질감을 아주 얇고 섬세하게 묘사하여, 옷 안쪽으로 여성의 신체 윤곽과 살결이 은은하게 비치는 시스루 효과를 극대화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레이턴 경이 살았던 대영제국의 황금기인 '빅토리아 시대 화풍'을 그대로 대변합니다. 당시 시대의 미술계를 지배했던 '빅토리아 화풍'의 대표작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당시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기에 미술 작품 역시 화려하고 높은 해상도를 자랑했습니다.

지금의 4K, 8K 초고화질 화면에 연예인들이 자신의 결점이 드러날까 봐 걱정하며 완벽하게 꾸미는 것처럼, 붓 자국이 남는 것을 실력 부족으로 여기던 '완벽주의 화풍'이었습니다.  피부는 도자기처럼 매끄럽게 표현했고, 머리카락 한 올과 드레스 주름까지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둔 '탐미주의적 화풍'이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고전주의 화가들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의 조각상, 신화, 우아한 드레스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작품 속에는 현실의 비참함이나 어두운 면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저 "눈으로 보기에 완벽하게 아름다우면 그것이 최고의 예술"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3. 인체의 왜곡? 철저히 계산된 기획 작품

몸을 동그랗게 웅크린 채 잠든 여인의 독특한 자세는 인체의 아름다움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받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미술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 포즈는 사람이 졸면서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없는, 해부학적으로 완전히 불가능한 자세라고 합니다. 화가는 동그란 구도 안에서 가장 완벽한 곡선의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모델의 허벅지 비율을 실제보다 늘리는 등 해부학적 왜곡을 서슴지 않았던 것입니다.



배경을 채우려던 작은 아이디어가 낳은 대작

그렇다면 화가는 어떻게 이런 독창적인 포즈를 구상하게 된 걸까요? 여기에는 흥미로운 탄생 이야기가 있습니다. 레이턴은 경은 '여름의 수면(Summer Slumber)'을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1. '여름의 수면'을 그리던 중, 대리면 욕조 아래쪽의 돌벽 면이 밋밋하다고 느낌.

2.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보너스 장식'으로 웅크려 잠든 사람을 작게 그려 넣기로 함.

3. 모델에게 "몸을 공처럼 둥그렇게 웅크려 봐주세요"라며 정교한 포즈를 요구함.

4. 스케치북에 라인을 따보니 둥근 어깨, 허벅지, 엉덩이로 이어지는 완벽한 곡선미에 화가가 매료됨.

5. 장식으로만 쓰기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아예 단독 작품' 타오르는 6월'을 제작함.

결국 밋밋한 배경을 채우려는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세계 미술사를 흔든 거대한 명작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4. BRIGHT ORANGE의 시각적 이미지


네  가지 종류의 종이 위에 브라이트 오렌지 컬러의 색연필로 테스트한 발색 컷. 점점 진해지는 색칠 면적과 곡선, 별 모양, 그리고 'PENCIL' 글씨가 종이 재질별로 비교되어 표현되어 있다. / Color swatches of a bright-orange colored pencil tested on four types of paper. It shows the color gradient shading, wavy lines, stars, and the handwritten text 'PENCIL' to compare on each paper texture.
브라이트 오렌지 컬러 색연필 4종 종이 발색 테스트

마치며

브라이트 오렌지라는 색상을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그림이지만,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스토리가 가득해 반했습니다. 정말 한나절을 꼬박 이 그림을 알기 위해 검색을 했지만 저의 글 솜씨가 부족한 탓으로 대단함을 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타오르는 6월'이라는 명작과 화가인 '프레더릭 레이턴 경', 그리고 수수께끼 모델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는 정말 너무도 위대하고 하고 아름답습니다. 못다 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은 [2편]으로 올리고 싶습니다.

제 눈과 마음을 홀린 이 아름다운 예술을 만나게 해준 오늘의 색연필 컬러, '브라이트 오렌지'에게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