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OCK(찰록) 들갓과 대기근의 구황식물 이야기 (520 색연필 #6)

저의 520개 색연필 세트에서 순서대로 이번에 꺼내 든 색은 'CHARLOCK(찰록, 혹은 차록)'입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름이 처음이고 아무것도 몰라서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이 색의 이름은 한국어로 '들갓'이라는 식물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들갓(차록)에 대해 알아볼수록, 아주 대단하고 눈물겨운 역사를 품은 식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유럽의 대기근 시대에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지켜준 위대한 '구황식물'이었던 차록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520 색연필 분홍색과 흰색이 섞인 거친 질감의 배경 위에 가로로 놓여 있는 찰록 색상의 제품 전체 사진. / A full shot of the 520 colored pencil in charlock color placed horizontally on a textured pink and white background.
520 색연필 #6 찰록 색연필 전체

1. 대기근을 버텨내게 한 구황식물 '차록'의 발견

과거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참혹한 대기근이 닥쳤을 때, 서민들은 길가에 흔히 자라던 야생 들갓(찰록)을 뜯어 먹으며 굶주림을 버텨냈습니다.

  • 봄철의 비상식량(잎과 줄기): 봄에 갓 자라단 어린잎과 연한 줄기를 채취해 끓는 물에 푹 삶아 먹었습니다. 대기근 당시에는 쐐기풀 같은 다른 야생 풀들과 섞어 죽처럼 끓여 배를 채웠는데, 갓 종류 특유의 쌉싸름하고 매콤한 맛이 났다고 합니다.
  • 눈물겨운 생존의 기록 루티 빵(Reuthie bread): 꽃이 지고 난 뒤 맺히는 씨앗(겨자씨)을 바싹 말린 후 돌로 빻아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서민들은 아주 소량의 곡물 가루에 이 차록 씨앗 가루를 엄청나게 섞어 양을 불린 뒤, 뜨거운 돌판에 납작하게 지져 구워 먹었습니다. 지금의 빵처럼 부드럽지도 않고, 맛이 있지도 않은 진흙 같은 상태의 비상식량이었지만 사람들의 목숨을 이어가게 해 준 고마운 음식이었습니다.

520 색연필 숫자 13과 은박 CHARLOCK 문구가 새겨져 있는 몸통 클로즈업 사진. / A close-up of the 520 colored pencil body engraved with the number 13 and silver foil CHARLOCK.
520 색연필 13 CHARLOCK 각인

2. 성경 속 '겨자씨 비유'의 진짜 주인공

신약성경에는 "겨자씨 한 알이 자라 새가 깃들 정도로 큰 나무가 된다"라는 비유가 나옵니다. "시작은 보잘것없이 아주 작지만, 나중에는 엄청나게 창대해진다."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현대의 식물학자들과 성서 연구가들은 이 비유 속 겨자가 거대한 대형 나무가 아니라, 바로 차록(Charlock) 같은 야생 겨자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 찰록이 가진 무시무시한 생명력과 특징을 보면 이 학설에 깊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520 색연필 은박으로 Y18 520 colors 문구가 새겨져 있는 끝부분 클로즈업 사진. / A close-up of the 520 colored pencil body engraved with silver foil Y18 520 colors text.
520 색연필 Y18 /520 colors

3. 60년을 잠들었다가 피어나는 무시무시한 생명력

차록의 씨앗은 흙 속 깊이 묻히며 최대 60년 동안 죽지 않고 휴면 상태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풀 한 포기 없던 목초지나 황무지를 도로 공사나 건축을 위해 포클레인으로 한 번 뒤엎으면, 수십 년간 땅속에 잠들어 있던 차록 씨앗들이 일제히 햇빛을 받아 온 들판을 노랗게 뒤덮는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이들은 '흙이 뒤집힌 낯선 땅'에서 무섭게 피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아파트 신축 부지나 철길 주변 공터에서 흔히 보는 노란 꽃이 바로 이 식물일 확률이 높습니다.

520 색연필 분홍색 배경 위 찰록 색상 몸통과 옅은 갈색 연필심이 보이는 끝부분 클로즈업 사진. / A close-up of the 520 colored pencil featuring a charlock-colored body and a light brown tip on a pink background.
520 색연필 CHARLOCK 연필심


4. 로마 군인의 상비약에서 머스터드 소스의 시초까지

차록(학명: Sinapis arvensis)은 인류의 농경 역사보다 훨씬 전인 석기시대 유적지에서도 발견될 만큼 오래된 고대 식물입니다. 
  • 고대의 치료제: 고대 이집트의 무덤이나 그리스 의학 기록을 보면 차록 씨앗을 으깨어 약으로 썼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 머스터드 소스의 기원: 고대 로마 군인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 차록 씨앗을 필수 상비약이자 양념으로 챙겼습니다. 으깬 씨앗에 포도 즙을 섞어 고기에 발라 먹었는데, 이것이 현대 우리가 먹는 머스터드 소스의 최초 시초가 되었습니다.

5. 꿀벌의 눈에만 보이는 자외선 활주로

인간의 눈에 차록은 그저 노란색 꽃이지만, 자외선(UV)을 볼 수 있는 꿀벌의 눈에는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차록 꽃잎은 자외선을 반사하는 특수한 패턴을 가지고 있어,. 꿀벌의 눈에는 꽃잎 중앙으로 향하는 선명한 '검은색 활주로(유도선)'가 지도처럼 보입니다. 사람은 자외선을 피하려고 선크림을 바르지만, 차록은 자외선을 모아 꿀벌들을 정확하게 안내하는 영리한 생존 전락을 펼치는 것입니다.

 6. CHARLOCK 실제 발색 컷


520 색연필 네 가지 종류의 종이 위에 찰록 색상으로 선과 별 모양을 그려 테스트한 발색 사진. / A color swatch test of the 520 colored pencil in charlock color showing lines and star shapes on four different types of paper.
520 색연필 종이 재질별 찰록 발색 비교 (심이 단단하고 무르지 않은 질감)


마치며: 이름의 뜻을 알고 다시 보는 기특한 노란색

색연필에 쓰인 영어 이름을 찾아보기 전까지는 그저 예쁜 노란색의 한 종류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을 찾아보면서 이 식물이 살아온 역사를 보니 성경의 기록, 로마 군인의 역사, 대기근의 식량, 꿀벌과의 상생까지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단순한 노란색이 아니라 연두색이 살짝 감도는 'CHARLOCK(차록)'색상이 전보다 훨씬 기특하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인류와 자연을 위해 얼마나 오래 살아온 것인지, 그동안 준 도움은 얼마나 거대한지 감도 안 잡히는 위대한 색, CHARLOCK 이었습니다.